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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5일 일요일

[책 리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칼 융은 인간 안에 있는 그림자에 대해 ‘의식으로 적절히 통합되지 않은 부분이며 우리가 멸시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를 읽으며 융 심리학자인 로버트 존슨의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를 함께 읽었다. 로버트 존슨의 이야기는 융의 그림자 이론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역동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난 점차 늙고 끔찍하고 흉해지겠지.....내가 언제나 젊고 이 그림이 대신 나이를 먹을 수 있다면!그럴 수만 있다면 난 뭐든지 바칠텐데!]

도리언이 결코 되고 싶지 않은 늙고 추함에 대한 그림자를 초상화에 투사 시키는 순간 그의 삶 여정은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감당할 대안이 없었으나 바질경에게는 세상과 그의 내면을 연결해 주는 예술적 감각이 존재했다.

[해리, 도리언 그레이는 내게 예술의 동기와도 같다네. 자넨 그에게서 아무것도 보지 못할지 몰라. 난 그에게서 모든 걸 본다네. 그가 내 작품 속에 결코 존재하지 않듯이 아마 그에게서 그의 이미지를 볼 순 없을 거야. 앞서도 말했지만 그는 내게 새로운 방식을 암시하는 존재거든. 나는 어떤 선의 굴곡에서도 그를 발견하고, 어떤 색의 미묘함과 사랑스러움에서조차 그를 찾아낸다네. 그게 전부일세.”]

화가로서 개인적인 전성기를 맞이한 바질경은 도리언의 초상화를 통해 그가 가진 또 하나의 페르소나이자 원형을 발견했다. 반면 작품을 본 도리언은 눈앞에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와 점점 멀어지게 될 미래에 절규한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자신을 본능적으로 느낀 절망감은 곧 원치 않는 모습을 투사 시키는 은밀한 장소가 되었다. 불로초를 먹은 듯 누구나 부러워 할 생생한 젊음이라는 가면을 쓰며 초상화를 피할수록 도리언의 이중성은 더욱 극심해 진다. 자신이 되고 싶지 않은 그림자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지만 초상화 안의 또 다른 도리안은 맹렬하게 그를 따라붙는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위해 살기로 선택한 도리언은 무대 위의 시빌 베인을 보며 사랑에 빠진다. 그는 시빌의 아름다움을 검증하기 위해 핸리경과 바질을 데리고 연극을 보러갔다.
그러나 그녀의 연기는 형편없었고 무대 위에서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에 세 사람 모두 실망했다. 그렇다면 도리언을 매혹한 것은 그녀의 연기인가 그녀라는 존재인가.

초반부에 도리언은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바질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닐 거예요, 바질, 당신은 친구보다 작품을 더 좋아하잖아요. 당신에게 나는 청동조각상 정도의 가치밖에 없겠죠. 감히 말하지만, 그 정도도 안 될 거예요.]

그리고 그는 무대위의 실망스러운 시빌의 모습을 본 뒤 화가에게 했던 말을 돌려준다.
[....당신은 내 삶의 낭만을 망쳐버렸어....당신에게 예술이 없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난 당신을 유명하게, 찬란하고 숭고하게 만들려고 했는데. 세상은 당신을 숭배할 테고, 당신은 내 아내가 되었을 텐데. 이제 당신은 뭐지? 예쁘장한 얼굴의 삼류 배우일 뿐이야.”]

시빌에게 한 말은 그가 자신에게 한 말인지 모른다. 도리언의 내면에 자신이 용서할 수 없는 밋밋하고 추해져가는 모습을 시빌 베인으로부터 발견하고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도리언은 시빌 베인의 예술성에 반했고 그녀는 도리언이 자신의 존재에 반했다고 믿었다. 엇갈린 두 사람의 시선은 시빌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적어도 그녀는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에 대해 정직했다. 무대 위에서 더없이 빛을 발했던 그녀는 신이자 현실이었던 예술이 사랑으로 인해 그 껍질이 벗겨지자 가감 없이 자신의 민낯을 드러냈다. 예술보다 사랑을 따랐던 그녀의 용감함은 도리언의 배신으로 더없는 비참함으로 추락 했지만 적어도 자신에겐 정직했기에 그동안 맛보지 못한 해방감도 느꼈을 것이다. 또한 그녀의 진짜 모습은 도리언이 감추는 그것이기에 참을 수 없는 경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녀를 향해 던진 모멸감은 무의식 가운데 자신을 향한 모습이기도 하다.

사랑이란 무언가. 로버트 존슨은 자기 안의 고상한 가치를 상대방에게 투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그것을 온전한 사랑이라 부른다면 바질경과 시빌 베인은 사랑에 대한 가치를 나름의 방법으로 드러낸 경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정작 두 사람의 사랑의 대상이었던 도리언은 그들을 죽였고 스스로 생을 끊는 결과를 맞았다. 가면으로 연명하던 그가 그리도 감추고 싶어 하던 그림자를 바질의 작품과 시빌 베인의 민낯을 통해 드러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도리언의 초상화는 곧 그의 그림자였고 그림자는 도리언을 삼켜버렸다.

시빌 베인의 폭풍전야와 같은 긴 이야기는 처절하게 아름다운 독백이었다. 그녀의 독백을 읽고 나서 무대 위에 서있는 그녀의 평범함을 상상하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내면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무대라는 감옥으로부터 풀려난 해방감이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모멸감으로 다가왔을 때 충격은 죽음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을 정도 컸을 것이다.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에서인지 유독 시빌 베인의 삶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당신을 알기 전까지 내 삶에서 연기는 유일한 현실이었어요. 난 오직 무대 위에서만 살았죠...당신은 내 영혼을 감옥에서 해방시켰어요. 당신은 진정한 현실이 어떤 것인지 내게 가르쳐 주었어요. 오늘 밤 난 난생 처음으로 내가 항상 연기해 온 공허한 연극이 알맹이가 없고 엉터리인 데다, 어리석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오늘 밤 난 처음으로 로미오가 추하고 늙은 데다, 화장을 한 것을 의식했어요. 과수원을 비추는 달빛은 속임수이고, 무대 배경은 저속하고, 내가 말하는 대사는 비현실적이고 내 말이 아닌 데다 내가 하고 싶어하는 말도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어요. 당신은 내게 더 높은 어떤 것을 가져다 주었어요. .... 난 그림자에는 넌더리가 나요...갑작스레 내 영혼은 그 모든 것들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깨달은 거예요. 그 순간의 경험은 절묘했어요. 난 사람들의 야유를 듣고 미소를 지었죠. 그들이 우리의 사랑에 대해 무얼 알 수 있을까요. 나를 데려가세요. 도리언. 우리가 온전히 홀로 있을 수 있는 곳으로 나를 당신과 함께 데려가요. 난 무대가 싫어요. 내가 느끼지 못하는 열정을 흉내 낼 순 있겠지만, 나를 불태우는 어떤 것은 흉내 낼 수 없거든요. 오, 도리언, 도리언,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당신은 이해하시죠? 내가 사랑에 빠진 연기를 하는 게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건 신성모독인 거예요. 당신이 그걸 깨우치게 해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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