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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5일 일요일

[책 리뷰] 에밀 아자르 <자기앞의 생>

에밀 아자르 <자기앞의 생>



다른 삶

운동가는 길에 ‘청소년 출입금지 구역’이라고 적힌 집장촌이 있다.
다른 길도 있지만 가끔 일부러 그곳 주변을 거쳐 간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 바로 코앞에 있지만 넘기 어려운 삶에 대한 묘한 호기심이다.

아직 피임이 제대로 전파되지 못한 시절. 성노동하는 여성들로부터 어쩌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아이들이 생기고 그 중 모모가 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나치시절을 겪은 로자는 자신의 이전 직업이기도 했던 성판매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을 돌본다. 건강과 젊음과 재산조차 얼마 남지 않은 그녀에게 남아있는 건 태어난 날도 모르고 부모의 존재도 알지 못한 아이들과 모모.

가족.
‘내가 몹시 슬퍼하는 것을 보고 로자 아줌마는 가족이란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주었다...그러고는 그녀에게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라고 몇 번이나 맹세했다.’

유태인인 로자에게 모모에 대한 사랑은 그녀가 과거에 겪었던 나치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힘이고, 학교에서조차 입학 거부를 당한 모모에게 로자 아주머니의 유일한 사랑은 그를 자라게 하는 양분이다. 버리고 싶은 것이 가족이라는 세상에 외로움이라는 연대로 끈끈하게 엮인 또 하나의 가족.

혈육중심의 사회에서 가족은 당연한 명제이며 인간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종착점인 경우가 다반사이나 소설 안의 사람들은 돌아갈 곳이 없다. 하지만 그들 곁에는 소외된 환자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유태인 의사와 모모의 존재를 특별히 여겨주는 하밀 할아버지, 함께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생들이 있다. 거대한 몸집의 로자 아줌마를 옮겨주는 아프리카 이웃이 있고, 로자의 욕창을 닦아주며 살뜰히 챙겨주는 롤라 아줌마가 있다. 마른 땅에 사랑과 삶의 뿌리를 내려야 하는 곳에 이들의 사랑에 대한 감각은 공기 없는 곳에 숨 쉴 곳을 마련해 주듯 지극하다.

‘아주 못생긴 사람과 살다보면 그가 못생겼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정말로 못생긴 사람들은 무언가 결핍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로자 아줌마는 그렇게 못생긴 것도 아니었다.’

사랑, 안락사
‘이제 모두 다 지겨워요. 로자 아줌마만 빼고요. 아줌마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 사람이에요. 의사들을 즐겁게 해주자고 아줌마를 식물처럼 살게 해서 세계 챔피언이 되게 할 생각은 없어요.’

사랑했던 유일한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의 의미.
법과 시스템에 갇혀 생사를 결정할 권리조차 행사할 수 없던 로자에게 모모와 함께 보낸 시간은 그의 마지막 선물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줌마 없이 세상에 홀로 나갈 채비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 없이 살 수 있다는 하밀 할아버지의 말이 모모에게 단번에 믿기지 않았다는 건 참 다행스런 일이다. 경험 많은 노인보다 세상은 훨씬 넓으니깐.  어떻게든 사랑을 믿어보려는 모모의 마음을 배우고 싶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이 지금 어딘가에 있는 또 다른 모모들을 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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