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를 그만두었던 이유
육아휴직을 큰 계획이나 야망을 품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서 그냥 책 읽기를 시작했다. 내 구글 드라이브에 [독서]라는 폴더가 있는데(있었는지도 몰랐다) [2010년]이라는 폴더가 덩그러니 있고 그 안에 내가 쓴 책 리뷰 몇 편이 있었다. 9년전... 인문학 열풍이 불던 때였던거 같다. 회사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책을 읽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었던 기억이 난다.
책을 읽으며 내 생각도 많이 변했었던 거 같다. 초중고대대학원를 졸업해 회사에 왔지만 내가 이 회사에서 일 하는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나의 꿈은 무엇이었지?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나의 인생은 회사를 위한 건가 나를 위한 건가.. 머 이런 고민들을 했었던 거 같다.
그리고 “88만원 세대”를 읽으며 ‘나’만 생각하다가 ‘사회’에 눈을 돌리게 되고 사회의 불합리가 보이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내 첫 직장 한진중공업에서의 일방적인 정리해고로 인한 많은 동료들의 원하지 않은 실직과 김진숙님의 크레인 농성, 희망버스 등을 나는 회사 안에서 그냥 지켜보는게 아니라 강제로 그들과 반대의 입장에 서야만 했었다. 그 때의 참담함이란…
회사에 진절머리가 났다. 내 꿈을 좇아서 가고 싶었다. 근데 내 꿈이 무엇인지 몰랐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에서 진행한 진로학교를 인터넷으로 신청해 들었다.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위한 교육이었지만 나에게 필요한 교육이었다. 자기의 적성,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30세였던 그때 처음 하게 된 것이다.
그때 마침 적정기술이란 용어를 접하게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제 3세계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일이란다. 멋지게 보였다. 적정기술에 한번 내 인생을 걸어보고 싶었다.
포항 한동대에 적정기술연구센터라는게 있는 것을 알아냈고, 그 곳의 교수님께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 그곳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당시 교수님께서 안식년이셔서 스카이프로 화상통화를 하며 약간의 면접을 겸해 여러 의견을 나누었다. 가슴이 두근거렸었던 거 같다. 근데 결국은 그 일을 하지 않았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급여가 월 150정도 된다고 하셨는데 당시 둘째 아이가 아내의 배 속에 있었기 때문에 생활이 가능한 금액이 아니었다.
그런 나의 현실적 선택에 좌절했다. 꿈과 현실의 괴리. 난 결국 ‘돈’을 벌어야만 하는구나. 돈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상만 좇게 되는 거 같았지만 현실에서 그 이상을 좇지 못하는 비겁한 나를 보면서 책 읽기를 그만두었던 거 같다. 그냥 세상에 순응하며 살자고…
그렇게 2010년 이후로 책을 손에서 놓게 되었다. 철저히 세상에 순응하며 살았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회사에서의 성공을 위해 달려갔었다. 두 번째 직장을 대리 1년차로 입사해서 과장 진급을 한번의 누락 없이 바로 됐다. 당시 2년, 3년 누락된 다른 선배직원들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승진했다. 회사에서 많은 인정도 받았다. 에이스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 여세를 몰아 세 번째 직장으로 이직도 성공해 내 인생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회사에서 치열하게 9년을 보내고 휴직을 한 지금 다시 책 읽기를 시작한다. 30세의 마지막 해를 보내며 내 인생을 돌아보고 40세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 그동안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 위해 달렸다면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을 돌아보고 싶다.
육아휴직을 큰 계획이나 야망을 품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서 그냥 책 읽기를 시작했다. 내 구글 드라이브에 [독서]라는 폴더가 있는데(있었는지도 몰랐다) [2010년]이라는 폴더가 덩그러니 있고 그 안에 내가 쓴 책 리뷰 몇 편이 있었다. 9년전... 인문학 열풍이 불던 때였던거 같다. 회사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책을 읽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었던 기억이 난다.
책을 읽으며 내 생각도 많이 변했었던 거 같다. 초중고대대학원를 졸업해 회사에 왔지만 내가 이 회사에서 일 하는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나의 꿈은 무엇이었지?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나의 인생은 회사를 위한 건가 나를 위한 건가.. 머 이런 고민들을 했었던 거 같다.
그리고 “88만원 세대”를 읽으며 ‘나’만 생각하다가 ‘사회’에 눈을 돌리게 되고 사회의 불합리가 보이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내 첫 직장 한진중공업에서의 일방적인 정리해고로 인한 많은 동료들의 원하지 않은 실직과 김진숙님의 크레인 농성, 희망버스 등을 나는 회사 안에서 그냥 지켜보는게 아니라 강제로 그들과 반대의 입장에 서야만 했었다. 그 때의 참담함이란…
회사에 진절머리가 났다. 내 꿈을 좇아서 가고 싶었다. 근데 내 꿈이 무엇인지 몰랐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에서 진행한 진로학교를 인터넷으로 신청해 들었다.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위한 교육이었지만 나에게 필요한 교육이었다. 자기의 적성,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30세였던 그때 처음 하게 된 것이다.
그때 마침 적정기술이란 용어를 접하게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제 3세계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일이란다. 멋지게 보였다. 적정기술에 한번 내 인생을 걸어보고 싶었다.
포항 한동대에 적정기술연구센터라는게 있는 것을 알아냈고, 그 곳의 교수님께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 그곳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당시 교수님께서 안식년이셔서 스카이프로 화상통화를 하며 약간의 면접을 겸해 여러 의견을 나누었다. 가슴이 두근거렸었던 거 같다. 근데 결국은 그 일을 하지 않았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급여가 월 150정도 된다고 하셨는데 당시 둘째 아이가 아내의 배 속에 있었기 때문에 생활이 가능한 금액이 아니었다.
그런 나의 현실적 선택에 좌절했다. 꿈과 현실의 괴리. 난 결국 ‘돈’을 벌어야만 하는구나. 돈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상만 좇게 되는 거 같았지만 현실에서 그 이상을 좇지 못하는 비겁한 나를 보면서 책 읽기를 그만두었던 거 같다. 그냥 세상에 순응하며 살자고…
그렇게 2010년 이후로 책을 손에서 놓게 되었다. 철저히 세상에 순응하며 살았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회사에서의 성공을 위해 달려갔었다. 두 번째 직장을 대리 1년차로 입사해서 과장 진급을 한번의 누락 없이 바로 됐다. 당시 2년, 3년 누락된 다른 선배직원들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승진했다. 회사에서 많은 인정도 받았다. 에이스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 여세를 몰아 세 번째 직장으로 이직도 성공해 내 인생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회사에서 치열하게 9년을 보내고 휴직을 한 지금 다시 책 읽기를 시작한다. 30세의 마지막 해를 보내며 내 인생을 돌아보고 40세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 그동안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 위해 달렸다면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을 돌아보고 싶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