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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6일 일요일

[정싸라비아 원더우먼] 제 아이는 산만하지 않습니다


 네 번째 아침 조깅에 아이와 처음으로 함께 했다. 아이의 자전거 속도에 맞춰 초반에는 숨이 차도록 달렸다. 아이는 물가에 노니는 중대백로에 푹 빠져 가방에 든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찍는다.

산책로로 진입해 얼마간 앞서가던 아이가 나를 향해 천천히 유턴을 하다 반대쪽에서 오는 자전거와 부딪힐 뻔했다. 다행히 자전거 탄 분의 순발력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면하고 죄송하단 인사를 드렸다.

“얀아, 뒤를 볼 수 없으니깐 방향을 바꿀 때는 잘 봐야해.”
“응.”

옆에 있는 구름사다리에서 나는 한 손 건너잡기를 목표로, 야니는 한번 왕복 하는 걸 목표로 번갈아 매달렸다. 아이가 대로대롱 사다리에 매달려 있는데 지나가는 아저씨가 호통하듯 내뱉는다.

“아까 큰일 날 뻔 했어요~!”
“아. 죄송합니다.”
“으휴.. 애가 산만해가지고..”

빠른 걸음으로 늙은 아저씨가 사라진다.

“애가 산만해가지고.. 애가 산만해가지고..”

머릿속에 한 구절이 반복 재생되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생각한다. 
아이의 부주의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인데 그것을 산만하다고 할 수 있나. 나는 무엇을 두고 그 아저씨에게 죄송하다 했을까. 만약 아빠와 딸이었다면 그런 무례한 말을 던질 수 있었을까.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 정신을 차리고 뒤늦게 아이에게 물었다.

“얀아 아까 많이 놀랬지?”
“응.”
지나간 일이라 아이는 이미 잊은 듯 하다.

“아저씨, 아까 제 아이에게 산만하다고 한 거 어떤 걸 두고 그렇게 말씀 하신거죠? 댁의 아이도 아니면서 아이의 부주의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함부로 말씀 하는 건 아니죠. 이게 그렇게 본인을 불쾌하게 만들 일이었나요? 아이에게 사과하세요. 그리고 제가 아까 죄송하다고 했던 것도 취소할게요. 제가 죄송하다고 하는 건 제 아이와 부딪힐 뻔 했던 분에게만 해당합니다.” 

산책로의 반을 지나 혹시나 그 아저씨를 만나면 하고 싶은 말들을 생각해 본다. 
오늘따라 파란 등산복에 주황색 모자를 쓴 남자들은 왜 이렇게 많나. 아이의 자전거 속도에 맞춰 잰 걸음을 걸으며 사냥감을 찾듯 눈을 굴린다. 근데 나는 막상 그 아저씨를 만나면 저 말을 할 수 있을까. 

100미터 앞쪽에 체격과 복장이 비슷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뒤에서라도 얘기를 하자. 그가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내 아이에게 그 아저씨의 말이 어떤 게 잘못됐는지 얘기해야지.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용기다. 가까워질수록 그 사람이 맞는지 불분명해졌다. 혹시나 싶어 그보다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며 옆을 흘끗 보니 그가 아니었다. 안심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저희 아이는 산만하지 않아요.” 이 한마디 놓친 여파가 이렇게 크다니. 그의 한마디가 서로간의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게 하는 기재로 작용한 거 같다. 억울하지 않기 위해 제때 말하는 연습도 필요하구나. 때를 놓치면 괜히 찌질해 보일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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