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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일 월요일

[책 리뷰] 복음주의자의 불편한 양심



 '복음주의자의 불편한 양심' 이란 책이 얼마 전에 출간되어 아직 따끈따끈하다. 저자 칼 헨리의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하지만 김회권 교수와 양희송의 추천글에서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복음주의 진영에 던져진 폭탄과도 같은 책!”,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의 현실 참여 선언문”. 150여 쪽의 짧은 글이지만 멋진 표지 디자인과 양장으로 만들어진 책은 가격이 무려 9천원이다. 가격이 좀 과하지 않나 생각됐지만 그 가치가 대단할 것처럼 보였다. 대학생 시절 명색이 복음주의 선교단체에 몸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참여에는 소극적인 나에게 이 책은 어떤 도전을 주며 나를 깨울 것인가?

 이 책에서 칼 헨리가 근본주의의 목회자들이 설교 중에 사회문제를 언급하지 않으며, 거의 전적으로 개인의 죄에 대해서만 책망할 뿐 사회악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다루기를 꺼리는 경향이 지배적이라고 얘기한 점, 그리고 현대의 근본주의는 시급한 사회적 쟁점과 관련해 오늘날 세계의 지성에 사실상 아무런 도전도 제기하지 목하고 있다고 주장한 점은 한국의 보수기독교(그냥 교회라고 정의하고 싶다)를 잘 표현한 설명이라 생각된다. 이에 대해 칼 헨리는 본래 기독교의 복음은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역사적 기독교의 초자연주의가 현대의 딜레마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난 이 논의의 과정 중 두 가지에서 마음이 불편하다.

 첫째, 칼 헨리는 근본주의가 완전한 교리와 완전한 신학, 완전한 복음을 가진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 책이 출간될 당시인 1947년에 미국의 근본주의가 과연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충실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한국 교회의 상황을 볼 때 우리 교회 안의 복음이 과연 순전한 복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나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신광은 목사의 메가처치 논박과 같은 책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 교회는 심리학,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크기, 성공주의, 기복주의 등과 같이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들을 예배하고 있다. 교회의 모습이 이러하니 책을 읽을수록 마음이 불편하다.

 둘째, 칼 헨리는 현세적인 초점에 맞추어 구속의 메시지를 잘 전하기만 하면 정치, 경제, 학문 등 세계의 모든 문제에 유일하고도 적합한 해결책이 될 것이고, 악에 대한 유일하고도 충분한 해결책이며, 복음주의적이지 않은 사상으로는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을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맞는 얘기이긴 하나 추상적이다. 그의 책 곳곳에서 이런 추상적인, 소위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답답해서 책을 읽는 내내 질문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칼 헨리는 대답한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126p). 대안 없는 원론적인 얘기만 하고 있어 도전받기는커녕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것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말만 번드르르하게 하고 실제로는 손해 보지도 않고 세상에서 챙길 거 다 챙기며 사는 게 나의 모습이고 세상에 비춰지는 모습 아닌가?

 기독교 복음이 완전하다는 전제와 그 완전한 복음에서 나오는 대안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칼 헨리의 주장은 지극히 당연하며 우리가 따라야할 믿음의 방향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는 원론적인 얘기일 뿐, 마음이 불편하기만 하다. 반면, 레슬리 뉴비긴의 방법이 한국 교회의 현실을 직시하며 세상을 향한 대안을 세우는데 더 적합할 듯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정사와 권세에 대한 이해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세상의 정사와 권세를 굴복시킨 하나님의 방법을 기억해야 한다. 사회를 향한 대안은 현재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정사와 권세가 어떠한 모습인지 실체를 파악하는데서 시작해 어떻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저항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방법이 나에게는 더 도전된다.

 이 책은 신학을 전공한 분들이 미국의 근대 기독교 역사를 연구할 요량이라면 추천하고 싶다.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읽을 경우에는, 이 책이 현대 한국 교회 현실에는 맞지 않을뿐더러 책 내용에 무슨 주의, 무슨 주의, 무슨 주의 하며 못 알아먹을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책을 다 이해하지 못해 이런 불편한 마음들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처럼 사는 삶이 이리도 어려운 말로 표현되어야 할까? 단지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현 세상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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