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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4일 토요일

[ 남성육아휴직 일기 ] 나는 왜 육아휴직을 했나 1. 불현듯 찾아온 남성육아휴직

대학원 석사를 졸업한 2008년,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나는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한 전문연구요원(병역특례) 편입을 위해 전공과는 상관없는 부산의 조선소에서 첫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조선산업 최호황기에 입사한 터라 신입 첫해 연봉이 4600정도 되었던거 같다. 하지만 리먼브러더스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조선경기는 급추락했고, 급기야 나의 회사는 희망퇴직이란 이름의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난 전문연구요원 편입중이라 정리해고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내 동기들의 대부분이 강제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아 회사에 충성하면 안되는구나... 필요없으면 가차없이 사람을 자르는게 회사구나..'

전문연구요원 3년의 기간을 채운 뒤 정나미가 떨어진 회사를 벗어나고 싶어 이전에 정리해고 당한 선배가 재직중인 포항의 한 회사로 이직을 결심하고 이사 갔다. 내부추천으로 입사가 거의 확정적이라 최종 합격 결정이 안내려진 상태에서 부산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성급히 포항으로 이사 갔다. 너무 방심한 탓일까? 아니 사회에 대한 불만이 가득할 때여서 일까? 그만 인적성 검사에서 탈락해 버렸다. 당시 아내와 첫째 아이가 있었던 터라 실직이라는 상태는 아주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렇게 6개월을 포항에서 실직상태로 지냈다.

입사원서를 꽤 많이 썼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취업은 자기의 실력은 물론 기본이 되어야겠지만 '운'이 많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운이 좋게 당진의 한 제철소에 경력으로 입사하게 되어 거기에서 5년을 보내며 둘째, 셋째 아이를 얻게 되었다. 회사 참 다니기 좋았었는데 조직개편을 하면서 위 상무가 바뀌어 업무강도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고 주말에도 마음이 편히 쉴 수 없는 상황이 되버렸다. 이렇게는 못살거 같아 2번째 이직을 결심하였고 또 한번 운이 좋게 화성 동탄의 한 반도체회사로 이직한다.

3번째 회사는 지난 회사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조선소, 제철소에서 남자들과 부대끼며 거칠게 직장생활을 했었는데 이번 회사는 여성분들도 많아서 그런지 부드럽다고나 할까. 업무 강도도 쎄지 않고, 심지어 자율출퇴근제라 주 40시간만 알아서 채우면 되어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이 가능했다. 그러던 어느날 옆부서의 어떤 남성 분이 육아휴직을 하게되어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라고 인사를 하러 오셨다.

'남성육아휴직 !'

직장생활 10년 만에 꿈에서나 보던 남성 육아휴직을 하는 사람을 첨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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