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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9일 수요일

[책 리뷰] 고기로 태어나서


“세상의 더 낮은 곳을 보는 사람”(김민식 MBC PD), 작가 한승태가 한국 식용 동물 농장 열 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며 자기 자신과 그곳에서 함께한 사람들 그리고 함께한 닭, 돼지, 개 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노동에세이이자 ‘맛있는’ 고기(닭, 돼지, 개)와 ‘힘쓰는’ 고기(사람)의 경계에 놓인 비망록이다.

전작 『인간의 조건》을 통해 꽃게잡이 배에서 편의점에 이르는 여러 일터에서 체험한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를 기록했던 저자는, 고기를 위해 길러지는 동물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는지 4년 동안 일하면서 경험했다. 시작은 “내가 알고 있던 동물이 그곳에는 없었다”는 단순한 충격과 공포로 인한 호기심이었지만, 닭, 돼지, 개 농장을 거치면서 생명의 존엄과 윤리에 대한 문제부터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까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노동하는 인간의 삶을 담은 담담한 에세이이면서도,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부터 한국 식용 고기 산업 생태계의 단면에 대한 사회적 관찰까지 다양한 화두들을 제기하고 작가 나름의 그에 대한 생각을 담아냈다.

식용 고기 문화 자체는 결코 야만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쉽게 일상생활 속에서 접하는 고기들이 생산되는 과정은 생명에 대한 ‘비윤리적인 과정’을 거친 것은 아닐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육즙이 흐르는 고기를 당신이 집어 드는 와중에 한번쯤은 놓여야 할 ‘고기로 태어난’ 존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yes24  책소개



‘나는 여기서 채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려는 것은 아니다.(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어떤 목표를 꿈꿔볼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맛있는 먹을거리뿐 아니라 동물의 살점으로서의 고기 역시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회식 자리에서 육즙이 흐르는 삼겹살 한 점을 들었을 때 고기 사이에 어떠한 환상도 남아 있지 않게 하는 것이다.’-서문 중에서
 
 인간의 입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동물들이 어떤 과정이 이루어지는지 작가의 경험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진다. 포식자와 피식자가 아닌 생명 대 생명이라는 연결점은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의 차이를 깨닫게 한다. 양계장과 도축장에서 이루어진 저자의 경험담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보다 더 참혹하다. 동물권이 보장되지 않은 사육장에서 동물들의 삶은 삶이라 부르기 어려울 거 같다.
 
 양계장의 구조와 닭의 유용성에 따라 그것의 쓸모가 결정되고 살아있는 병아리까지 쓰레기 폐기되듯 폐사 되는 과정은 여간 읽기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저자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이런 글을 쓰면서 어떻게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글을 읽은 나도 당장 다음 주에 우리집으로 초대한 손님들과 먹을 고기를 생각하니 함부로 그를 판단할 일이 아니다.
 
 저자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소박하고 평범했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먼지처럼 날아드는 사체들의 털과 냄새를 익숙하게 참아낸다. 농장 안 숙소에는 이주 노동자, 가족과 사는 사람, 어머님께 안부 전화 드리는 중년의 솔로 남성이 살고 있다. 살육의 현장에서 정직한 노동을 하고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안위를 챙긴다. 늘 그렇듯 사람들이 기피하는 곳은 약자들로 채워진다. 

 생산과 소비자 사이의 철저한 분리 덕에 우리는 고기의 육즙과 질을 맘 놓고 얘기할 수 있다. 양계장과 도축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로 먹기 좋게 포장된 고기는 마트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다. 우리는 비윤리 식탁위에 차려진 맛있는 고기들을 상상하며 소비한다.
 
 수의사인 지인이 A++과 같은 등급제는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왔고 마블링이 잘 된 고기는 비육으로 키워야 한다고 했다. 비육은 동물의 움직임을 최소화 하여 지방이 차곡차곡 쌓이게 키우는 방식이다. 인간이 선호하는 고기 맛을 내려면 동물의 자유는 억압된다.
 
 내가 섭취하는 고기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알게되면 고기도 한때 생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채식주의자가 될 수 없기에 먹는 고기인 나와 입안으로 들어오는 고기가 속한 세상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그러면 고기로 과식하는 일도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죽기 위해 태어난 소와 돼지와 닭의 수가 줄어들수록 탄소배출량도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기억한다는 건 나와 지구와 동물을 위해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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