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란한 결혼 -우치다 타츠루
당신이 배우자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건 십중팔구 그 배우자 본인도 잘 모르고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당신, 내게 진짜 원하는 게 뭐야?”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질문에 곧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 ‘잘 모르겠는 사람’이 항상 자기 옆에 있고 같이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함께 놀며, 기대고 싶을 땐 의지할 기둥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인식하시는 게 좋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훨씬 감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오랜 시간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두 분 모두 문득 옆에 있는 배우자의 옆모습을 보고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라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내가 이 사람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구나’ 하고 불안할 때도 있을 겁니다. 이런 의문과 불안감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때는 그 ‘잘 모르겠는 사람’과 나름의 세월을 서로 의지하며 지내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그것이 오히려 ‘기적’이었음을 마음속에서 축복하시라고 조언 드리고 싶습니다.
---「축사2 」중에서
타자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안내서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찍으면 ‘남’이 된다는 말은 시간이 더해질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관록의 말이다. 나의 ‘님’이 끝까지 ‘님’으로 남으면 좋겠지만 ‘님’보다는 ‘남’과 동거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본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결혼을 한다.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거 같아서, 나를 받아줄 사람이 그(녀)밖에 없을 거 같아서.. 수많은 고민 끝에 결혼이란 공동생활을 시작하지만 사랑 하나면 다 잘 되기엔 인생이란 산이 너무 크다. 허니문 효과로 결혼초기는 대체적으로 순항하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이 사람이 점점 낯설어진다. 화성과 금성이 만나듯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을 경험하게 된다.
‘곤란한 결혼’의 저자 우치다 타츠루는 결혼의 의미와 난감해진 부부관계가 삶의 영역들의 관점을 재설정 하므로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일반적인 결혼의 정의와 부부관계를 지켜내기 위한 부분은 대개 공감이 갔지만 일본의 개인주의로 발생되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도 있었다. 예를 들어 가족비밀에 있어 ‘서로 겹치지 않게’삶을 확보하는 스타일은 지극히 일본의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습성이 반영된 느낌이다. 애증의 관계로 얽히는 한국식의 가정에도 문제가 있지만 함께 있으나 서로의 내밀한 마음을 나누지 않는 관계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본다. 어쩌면 우치다 다츠루는 깊은 관계로부터 오는 풍요를 경험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남편과 힘든 시기에 이 글을 읽으니 관계적인 갈등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확대경으로 보듯 읽혔다.
‘나는 어떻게 해야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나’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이때 배우자의 존재는 잊어버리세요. 이는 잘못된 문제 설정입니다. 배우자의 존재는 잠시 제쳐두고 자신이 배우자 이외의 어떤 조건을 충족시키면 슬럼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겁니다. 218쪽
권태기를 행복한 상태로 바꾸는 건 유감스럽게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예방 조치를 취할 수는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즐거우면 권태기가 찾아와도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권태기에 빠졌다는 사람들은 일종의 자기 권태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가 자신의 모습에 질려있는 거지요219,220
타인에 대한 호기심은 자기에 대한 호기심과 연동되어 있습니다.221
관계의 최전방에서의 노하우를 전수받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문제가 복잡할 때 나에게 먼저 시선을 집중하고 방해물이 뭔지 탐색해야 한다. 내가 없어질수록 나는 타인을 더 괴롭힐 수 밖에 없다.
배우자에 대해 ‘잘 모르겠는 사람’이 항상 자기 옆에 있다는 인식에 대한 부분은 다른 관점으로 상대방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함께 한 세월에 비례해 더 잘 알 것이란 착각으로 마주하니 서운함이 깊어진 것이다. 내가 집중했던 과녁이 바뀌니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너그러워졌다.
최소의 가족단위인 부부로부터 상대방을 알지 못한다는 인정과 나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내 것을 나누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만 한다. 저자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방법적인 면에 있어서는 저자의 글에 동의가 되었지만 온전히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에 관한 그만의 철학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책의 서두에 작가가 언급한 ‘결혼생활을 애정과 이해 위에 구축해서는 안됩니다.’라는 구절이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먼저 나를 챙긴 후 남편과의 관계를 유지하기보다 힘들고 더디더라도 상대방의 존재를 기억하며 나를 챙겨가는 것은 무리일까. 그런면에서 스캇펙이 ‘'자기 자신이나 또는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언급한 사랑에 대한 정의는 막연할지라도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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